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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2026.05

AI 시대에 부티크 자문업이 살아남는 방식

회사 사명을 변경하면서 3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했습니다.

사명을 변경한 이유는 하이어벤처스가 너무 VC 이름스러워 처음 만나면 항상 혼동을 줬기 때문입니다.

하이어비전파트너스로 하여 '더 높은 비전'이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자문사 이름으로는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사명 변경과 함께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웹사이트입니다.

그 전 웹사이트는 외주를 통해 만들었었는데, 별게 없는 웹사이트라도 500만 원의 외주비가 발생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추가될 때마다 외주사에 요청을 해야 해 무척 번거로웠거든요.

그로부터 딱 3년 만에, AI 기술로 인해 저 같은 문과생도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의 도움 없이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3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들어간 시간은 도합 15시간 내외로 추정됩니다.

만들기 전에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도움 없이 괜찮은 퀄리티의 웹사이트 제작이 가능할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웹사이트의 톤앤매너를 전형적인 M&A 자문사나 PE 사이트처럼 대형 빌딩 숲 배경의 사진 등을 쓰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만들었습니다.

느낌 있는 매거진 웹사이트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여기에 쓰인 일러스트 이미지는 4~5장이지만, 생성해본 이미지는 족히 200장이 넘습니다. 다시 생성하고 돌리고, 컨셉에 대한 프롬프트를 다시 써가며 고민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외주 디자이너한테 시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과 눈치를 봐야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ChatGPT가 세상을 놀라게 했던 4년 전과 비교보면, AI로 인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위협받는 건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속한 자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Claude는 엑셀 모델링을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과거처럼 raw data를 일일이 함수를 걸어가며 피벗테이블 돌려가며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계정별 원장을 집어넣고 비용의 성격별로 분류해 달라고 하면 3분 만에 완벽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IR 자료나 IM 자료의 컨셉을 만들어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만 저는 이 자문업은 시니어일수록, 파트너일수록 아직 충분히 먹고 살 룸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AI의 발전으로 인해 자문사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주니어를 많이 채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몇 번의 고민을 했지만, 그때마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주니어 채용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미팅 내용 요약, 이메일 발송, 계약서 작성, 제안서 작성 등은 AI로 작업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마음껏 혼낼 수도 있습니다. (욕도 섞을 수 있고요.)

이렇다시피 주니어 업무는 상당 부분 대체 가능하지만, M&A나 투자유치에 있어서는 아직 많은 영역이 사람의 역할, 특히 시니어나 파트너 레벨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우선 딜을 발굴하는 것, 매도자를 찾아 설득하고, 회사와 충분한 인터뷰를 통해 투자 하이라이트를 도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AI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투자 하이라이트를 뾰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은 주지만, 애초에 그 투자 하이라이트는 인터뷰를 통해 받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한 딜의 과정 가운데, 양쪽의 조건을 조율하며 그때마다 감정이 상하지 않게 조율하고, 매도자와 매수자가 만날 수 있게 새로운 딜 구조를 도출하고 티키타카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buyer나 투자자 universe에서 가장 적절한(관심이 크고 fit이 맞을) 투자사·매수자를 걸러내서 매칭하는 것 역시 아직 AI의 손이 닿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다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협상 보조 AI, 관계 매핑 AI, origination 보조 도구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5년 후 자문업의 모습은 지금과 또 다를 것입니다.

그동안 자문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모델링, 자료 정리, 초안 작성)은 적극 활용하고, 그렇게 확보된 시간과 에너지를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판단, 협상, 관계, 발굴)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가 외주 없이 만들어졌듯이, 자문 업무의 많은 부분이 더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부티크 자문사에는 유리한 환경입니다.

다만 결국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과 일할지, 어떤 사람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 그것이 자문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